
- [구본준의 한국의 현대 건축] 해마다 계속 지어져 가는 ‘건축 실험장’ 사옥 - SKM 사옥 구본준의 한국의 현대 건축 201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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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완성되지 않고 해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건물이 있다. 바로 건축설계사무소 SKM의 사옥이다. 건축적으로 멋진 건물보다, 그 이전에 ‘하자가 없어 귀찮게 손볼 일이 없는 건물’이 되는 것이 필수라는 지론답게 SKM 사옥은 건축용 연구실험 공간으로 늘 변화하고 있다. 건축가가 직접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좋은 것이라야 건축주에게도 권할 수 있다는 건축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고급 빌라와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골목. 외관만 봐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크지 않은 건물 하나가 있다. 세련된 디자인이 딱 봐도 건축가가 설계했음을 알 수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묘한 부분은 벽이다.
건물 앞의 야트막한 담은 온통 식물로 뒤덮여 있고, 그 너머 보이는 건물 정면 벽도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풀이 벽을 따라 올라가며 자란다. 쇠줄로 만들어 속을 비운 틀 안에 꽃이며 덩굴식물을 심어 벽을 덮었다. 간결하고 모던한 외벽 자재와 푸른 식물이 대비되며 공존하는 모습은 아직까지 일반 건물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 더 넉넉하고 더 독특하게, 사옥을 실험하다
- 회사 사옥이어서 일반 공개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건물 안에 들어가면 더욱 놀라게 된다. 1층에 들어서는 순간 어딘가 느낌이 다르다. 일반 건물에서 한 층 높이인 층고는 대부분 2.8~3m 정도인데 이 사옥은 1층 층고가 무려 6m에 이른다. 사무 공간으로 쓰는 지하층은 5.5m, 회의실 등을 배치한 2층은 4.5m 높이다. 일반 건물이었다면 4개 층을 올렸을 높이에 단 두 개 층만 들였다. 천장 높이를 30cm만 높여도 그 느낌이 훨씬 시원하고 넓어지는데 2개 층을 터서 한 층으로 했으니 건물 어디에서나 마치 고층빌딩 로비 같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층고가 높은 사옥일 것이다.
- 이 독특한 빌딩은 건축설계사무소 SKM의 사옥이다. 건축가 민성진씨가 이끄는 SKM은 직원이 20명 안팎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굵직하고 눈길을 끄는 건축물을 설계해온 국내의 대표적인 중견 설계사무소다.
설계사무소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전문 직종이라 화려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엄청난 돈을 버는 업종은 전혀 아니다. 그런데 SKM은 왜 이렇게 모든 업무 공간을 넉넉하게, 그리고 독특하게 사옥을 지었을까? 그 이유는 이 빌딩이 일종의 ‘건축 실험용 빌딩’,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건축물을 설계하는 회사의 자체 ‘R&D 센터’ 기능을 최우선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 건축가가 좋다고 느껴야 건축주도 만족한다
- 건축가들은 건축주의 부탁을 받고 다른 사람들이 살고 이용할 건물을 설계하기 때문에, 정작 자기 자신은 직접 설계한 집이나 빌딩에서 생활해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건축가는 자기가 설계한 건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나 불편함을 100% 알기가 불가능하다. 또한 건축주에게 다양한 시도와 실험적 제안을 하면서도 그 결과를 미리 확실하게 예측하기가 어렵다. 모든 건축가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이 어려움 때문에 민성진 건축가는 2009년 처음으로 사옥을 마련하게 되었을 때 다양한 실험을 직접 해보고 체험하는 사옥을 짓기로 했다. 건축가가 직접 경험해보고 좋은 것이라야 건축주에게도 권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식물이 우거진 벽도 이런 실험 중 하나다. 벽을 식물로 덮는 벽면 녹화는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등 그 사례가 아주 드물지는 않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은 건물들 대부분은 완공 때만 해도 그토록 근사해 보였던 벽체 식물들이 불과 1~2년 만에 죽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매년 추가 비용을 들여 새로 심는 곳들이 태반이다. 겉으로 보기 좋게 식물을 심을 흙 두께를 너무 얕게 해서 뿌리가 잘 내리지 못하는 탓이다.
그래서 SKM 사옥은 식물의 식생에 맞게 벽면에 일종의 화분을 달고 흙을 1m로 깔았다. 덕분에 식물이 잘 죽지 않고 해를 거듭할수록 무성해지고 있다. 또한 어떤 식물이 벽체 화분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 매해 교체해 심으며 데이터를 축적 중이다.
- 이 건물의 특징은 이처럼 건물 내부에 녹화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배치한 점이다. 건물이 들어선 대지 면적은 175평인데, 꼭 그만큼의 면적을 건물 지하로 파인 중정(안뜰), 앞마당, 그리고 옥상 정원으로 집어넣었다. 가장 면적이 넓은 옥상 정원은 최대한 다양한 식물 수종을 심고 매년 일부를 교체해 실험 자료를 모으고 있다. 벽면과 옥상 식물들에 자동으로 물을 주는 시스템을 수천만 원을 투자해 갖춘 것은 물론이다.
옥상 정원 역시 완공 직후에는 멋지지만 제대로 바닥을 처리하지 않으면 관리가 어렵고 물이 새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난다. 이 건물 옥상정원은 배수판을 깐 뒤 그 위에 부직포를 얹고 자갈을 씌우고 다시 부직포를 덮고 흙을 얹어 훨씬 두껍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물이 잘 빠지는지 자료용 동영상까지 촬영하는데, 정원으로 스며들어 배수관으로 나오는 물을 보면 흙이 씻겨내려 흙탕물이 되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맑은 물로 처리되어 내려갈 정도다.
- 다양한 조명과 높은 층고에는 이유가 있다
- 건물 내부는 특별한 인테리어를 하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조경과 조명에 특히 관심이 많은 민 대표는 건물 안에 모두 5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조명을 설치했다. 조명 기구의 브랜드와 종류를 다양하게 한 것은 물론이고 직접 조명과 간접 조명, 천장 조명과 벽면 조명, 조명 간의 간격과 배치 등에도 다양하게 변화를 주어 설계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다양한 조명 방식을 실제 일하는 회사 안에서 접해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에서다.
- 그러면 화끈할 정도로 높은 층고는 왜 시도한 것일까? 건축이 공간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공간의 ‘질’을 중시해서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공간을 2차원적인 ‘면적’으로만 환산하고 중시해왔습니다. 이제는 공간의 3차원적인 측면인 ‘체적’ 가치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이런 결정은 사무실 천장이 높아질수록 창의력도 높아진다는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 모든 기업에서 직원 1인당 사무 공간은 점점 좁아지는 추세이고, 이는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창의력과 생산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극복할 방법으로 천장을 높이는 기업들이 외국에선 이미 많이 보편화되는 추세다. 층고를 높이면 물에서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면적은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의 평균 사무실 층고는 20세기 평균 2.4m에서 최근에는 2.7~3m 수준으로 높아졌다.
“평일에 성당에 가면 오래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평소와는 다른 감정이 느껴지잖아요? 그건 일상 공간과 달리 층고가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창의력이 중요한 업종에서 층고는 예상 이상의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공사비는 20% 정도 더 들어갔지만 층고를 과감하게 높였습니다.” 물론 직원들의 만족도는 무척이나 높다. 천장이 높아 시원한데다 직원 당 평균 사무 공간이 10평 이상이어서 다른 회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널찍하다.
층고가 높아지면 냉난방비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단열을 강화해 상당부분 극복했다. 여름에는 더운 공기가 자연적으로 위로 올라가서 아래쪽이 자연스럽게 시원해지고, 겨울에는 가스로 바닥 온돌 난방을 해서 일반 가정집 수준의 유지비가 들어간다. - 늘 새로운 시도로 변화하는 사옥
- 건물 내부는 이런 식으로 학교에서 건축 설계를 배운 뒤 처음으로 실전에 뛰어드는 사원들을 위한 교재이자 실험장으로 꾸며져 있다.
이 회사는 입사하면 책 두 권 두께의 커다란 ‘매뉴얼’을 가장 먼저 받게 된다. 건물 구조와 설비 사용법을 세세하게 적은 책으로 강우, 태풍, 건조, 한파 등 기후 상황별 대처법이 수많은 사진을 곁들여 설명해준다. 심지어 다양한 의자 높낮이 조절법부터 계량기 보는 법까지 적혀있다. 이 건물에 처음 온 사람도 매뉴얼만으로 다룰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민성진 소장은 건물은 유기체와도 같아서 항상 보살펴야 하는 까다로운 존재란 점을 강조한다. 건축적으로 멋진 건물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하자가 없어 귀찮게 손볼 일이 없는 건물’이 되는 것이 필수라는 것이 지론이다. SKM은 그래서 자신들이 설계한 건물이 완공되면 건축주에게도 이 자체 매뉴얼과 똑같은 매뉴얼을 함께 건네준다.
이러다보니 SKM 사옥은 해마다 내부며 외부 조경이 구석구석 조금씩 변해간다. 늘 완성되지 않고 변화하는 건물이다. 새로운 건축 자재나 건축적 시도를 할 때 사옥에서 먼저 최대한 적용해본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들이 세련된 디자인 속에 자연스럽게 숨어 있다는 것이 이 건물의 매력이다. 건축가란 직업이 만들어낸 건축용 연구실험 공간이란 점에서 SKM 사옥은 평범해 보여도 무척이나 특별한 건축이다.
사진 | 구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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