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구본준의 한국의 현대건축

-음악 소리와 손님들로 완성되는 집 - 카메라타

걍~태수 2013. 6. 4. 14:55


구본준의 한국의 현대 건축 걸작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현대 건축물을 통해 인간적인 공간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구본준의 한국의 현대 건축] 음악 소리와 손님들로 완성되는 집 - 카메라타 구본준의 한국의 현대 건축 2013.03.08
음악 소리와 손님들로 완성되는 집 - 카메라타
수수하고 조용한 건물, 회색빛 시멘트 그대로 마감한 직사각형의 상자. 카메라타는 오롯이 음악을 위한 공간이자 공간이 말을 하는 공간이다. 음악과 건축이 보여주는 아날로그적 가치를 좇는 것만으로, 다채로운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카메라타는 단연 눈에 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음악에 길들고 숙성된 것일까? 이 건물이 가진 신비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 건물들이 즐비한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음악 감상실 ‘카메라타’ 건물은 아마도 가장 수수하고 조용한 건물일 것이다. 파격적인 디자인도, 현란한 색깔도 없이 그저 회색빛 시멘트 그대로 마감한 카메라타는 그 형태 역시 정직하기 짝이 없는 직사각형 상자 그대로일 뿐이다. 움푹 팬 정면 안쪽 어둡게 그늘진 곳에 달린 작은 철문은 입구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문을 여는 순간, 이 회색 상자 안에선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빈 공간을 음악으로 채우는 집 ‘카메라타’
3개 층 높이를 하나로 튼 음악 감상실은 이 건물이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시원하게 뚫려 있다. 왼쪽으로는 나무 거푸집으로 찍어내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10여 미터 높이의 수직 벽이 성벽처럼 우뚝 서있고, 맞은 편 벽 끝에는 사람 키만 한 스피커들이 클래식 선율을 뿜어낸다. 낮에는 높은 천장 위에 숨어있는 창문으로 햇빛이 드리우고, 밤에는 차분한 조명이 벽 표면 시멘트 무늬에 그림자를 만든다. 빛과 소리가 하나가 되는 콘크리트 상자, 말 그대로 비어있는 이 ‘공간’ 자체가 카메라타의 모든 것이다. 오랜 방송국 생활을 마친 뒤 고향 파주에서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살기 위해 음악 감상실이 딸린 살림집인 카메라타를 지은 건축주 황인용 아나운서는 바랐던 대로 주말이면 직접 선곡을 하며 음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건축가의 작품세계를 하나에 담다
카메라타에는 다른 건물에선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놀라운 장면이 들어있다. 내부 공간 안에 발코니처럼 보이는 2층 구조가 ‘하늘에 떠 있는’ 것이다. 나무로 만든 2층은 정말로 공중에 부유한다. 일반 건물처럼 시멘트 기둥과 보로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바닥 공간을 만들고 12개의 쇠줄을 매달아 고정시켰다. 건축주 가족의 공간이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는 않기 때문에 손님들은 아래에서 바닥만 올려다볼 수 있지만 공간 안에 또 하나의 공간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은 실로 강렬하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지은 카메라타를 진정 특별하게 만드는 건축적 장치다.



이 카메라타를 설계한 이는 조병수 건축가다. 소설가 이외수씨의 화천 집, 서울 경복궁 앞 곡선이 자유롭게 돌아가는 쌍둥이 건물 트윈트리 빌딩 등을 설계한 조 건축가는 지금 한국 건축계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건축가로 손꼽힌다. 미국에서 교수 건축가로 활동하다 국내로 돌아와 작업해오던 그가 본격적으로 건축계에서 유명해진 계기가 된 건물이 이 카메라타였다. 건축 자재의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리면서도 디테일은 세련되고, 디자인은 강렬한 힘을 지니는, 그러면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추구하는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 이 건물은 한국건축가협회 상은 물론 미국건축가협회 상까지 안겨주며 그의 출세작이 되었다. 그러나 설계 과정은 단순하고 명쾌한 형태처럼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창고’와 ‘성당’에서 찾은 아이디어
건축주 황인용 아나운서가 건축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한 새 집의 모습은 특정한 디자인이 아니라 모호하고 추상적인 분위기에 대한 것이었다. “유럽 성당에 가면 그 공간 자체가 뭔가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잖습니까. 공간이 말을 하는 듯 한 공간이면 좋겠어요.”
음악을 위한 공간, 그러면서도 공간이 말을 하는 공간. 건축가가 제안한 답은 뜻밖에도 ‘창고’였다. 군더더기라곤 없고, 네모반듯한 상자 같은, 그러면서도 낡고 어둡고 그 사이로 빛이 살짝 들어와 사람을 오히려 더 차분하게 만드는 공간이 바로 창고였다. 어린 시절 임진강 유역의 소금창고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린 황인용 아나운서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창고 콘셉트로 출발한 카메라타가 참고한 또 다른 건축은 ‘성당’이었다. 성당은 음향을 가장 중시하는 건축이므로 이런 선택은 당연해 보이지만 건축가의 관심은 그보다는 공간의 ‘비례’에 있었다. 성당처럼 천장이 높으면서도 직사각형인 공간인 감상실의 규모와 비례의 모델이 될 건물로 고른 성당은 건축가가 유학 시절 독일 콘스탄츠에서 만난 작은 시골 성당이었다. 성당인데도 창고처럼 장식은 거의 없고 크기는 아담한데도 그 단순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성당의 공간 비례를 참고하면서 건축가는 기둥이나 보가 전혀 없는 ‘순수한 육면체’인 집, 건축은 뒤로 숨고 음악이 주인이 되는 집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넉넉잖은 예산이었다. 음악 공간은 나무나 흡음재로 마감해야 소리가 알맞게 흡수되고 알맞게 반사되어 아름답게 들리는데 비용이 적어 콘크리트 벽에 흡음재를 붙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최대한 음을 흡수하도록 나뭇결무늬를 벽 표면에 찍어 만들고, 숨어 있는 흡음재를 공간에 집어넣었다. 그게 바로 공중에 떠있는 구조체다. 천장 역할을 하는 2층은 상자꼴 공간에 입체감과 활력을 불어넣는 디자인 요소로도 필요했지만, 그보다는 흡음판 기능이 더욱 중요했다. 건축가는 파주 지역을 돌아다니다 오래된 제재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줄톱으로 미송을 톱질해 표면에 미세한 요철을 만든 뒤 2층 바닥에 붙였다. 거대한 흡음판은 그렇게 하늘에 등장했다.



흐른 세월만큼 깊어지는 음악 소리
어느새 지은 지 10년이 되었지만 카메라타는 그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곱게 나이가 들었다. 거친 질감을 살린 디자인 덕분에 갓 지어도 10년은 된 것처럼 보였던 건물은 10년이 지났는데도 그 느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집은 변함없어 보이지만 카메라타의 음악 소리는 흐른 세월만큼 변해갔다. 그건 소리라는 신비로운 현상이 이 건물을 진정 마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묘합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음악 소리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황인용 아나운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건물이 음악에 길들어가며 숙성되는 듯한 현상이야말로 신비롭다고 말한다.



카메라타는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집이다. 가장 간단한 상자 모양일 뿐이어도 다채롭고 풍요로운 표정들이 건축에 담길 수 있다는 것을, 건축주가 확실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사용할 때 건축은 완성된다는 것을, 그래서 건축은 결국 건축주와 닮아갈 때 가장 매력적이란 것을 조용히 들려준다. 건축적으로는 창고라는 공간이 지니는 매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기능만을 추구해서 정직하고, 어둡기에 더 멋진 공간이 지니는 매력이다. 소박하고 값싼 재료들로, 기술적 완성도도 높지 않게 지었지만 카메라타가 헤이리에서 가장 인기 높은 명소가 된 것은 음악과 건축 두 장르가 보여주는 ‘아날로그적’ 가치를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 김종오 건축사진가, 구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