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구본준의 한국의 현대건축

-길이 된 집, 집이 된 길 - 지앤아트스페이스

걍~태수 2013. 6. 4. 14:44

 

 

 

 

 

[구본준의 한국의 현대 건축] 길이 된 집, 집이 된 길 - 지앤아트스페이스

구본준의 한국의 현대 건축 2013.04.12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로 가는 완만한 언덕길에 특별한 공간이 있다.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건물들이 오순도순 감싸고 있는 이곳은 작은 마을 안에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건물을 가르며 난 길은 유기적으로 공간을 이어주며 따로, 또 같이 하나가 되게 한다. 열린 공간 그대로 길이 되고, 집이 된 지앤아트스페이스는 건물 자체 못잖게 건물 사이사이가 만들어낸 공간의 매력을 한껏 뽐낸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로 가는 완만한 언덕길에 특별한 공간이 있다.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건물들이 오순도순 감싸고 있는 이곳은 작은 마을 안에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건물을 가르며 난 길은 유기적으로 공간을 이어주며 따로, 또 같이 하나가 되게 한다. 열린 공간 그대로 길이 되고, 집이 된 지앤아트스페이스는 건물 자체 못잖게 건물 사이사이가 만들어낸 공간의 매력을 한껏 뽐낸다.한국 현대 건축에서 가장 걸작은 어떤 건물일까?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정답은 정해져 있다. 조사에 따라 그 순위가 서로 바뀔 뿐, 최고 걸작 1위부터 3위까지는 거의 언제나 세 건물들이 독차지한다.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사옥’, 김중업 건축가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 그리고 조성룡 건축가의 ‘선유도 공원’이다.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공간사옥은 20세기 국내 건축계를 그야말로 양분하다시피 주름잡았던 최고 스타 건축가였던 김중업(1922~1988)과 김수근(1931~1986)의 대표작이다. 각각 1960년대와 1970년대 지어져 오랫동안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혀왔다.

 

 

건축을 넘어선 공간을 고민하는 건축가

반면 선유도 공원(2002)은 21세기에 지어진 건물임에도 단숨에 한국 최고의 건축으로 떠오른 비교적 최근의 걸작이다. 용도가 다해 쓸모가 없어진 한강 선유도의 정수장 건물을 헐어버리지 않고 최대한 재활용해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꾼 점에서 선유도 공원은 대중들과 전문가 양쪽 모두에게 호평 받는다.

건축가 조성룡 성균관대 교수는 이 공원을 설계하면서 건축 못잖게 조경을 중시해 건축을 넘어선 ‘공간’을 만들어낸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 최고로 꼽히는 정영선 조경가와 공동 작업해 건축과 조경이 하나가 되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만 해도 버려지게 된 산업 시설을 새로운 용도의 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하는 건축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물었던 시절이어서 선유도 공원은 외국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일반인들에게 조성룡 건축가는 김수근, 김중업처럼 유명하지 않지만 우리 건축계를 대표하는 거장 중의 한 명이다. 최근 건축전문지 <SPACE>가 건축전문가 100명을 조사해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20개를 발표했는데, 가장 많은 작품이 꼽힌 건축가가 바로 조성룡 교수였다. 선유도공원이 3위, 1세대 한국 건축가 나상진의 잊혀진 작품을 리노베이션해 되살린 서울 어린이대공원 안 꿈마루(11위), 광주 의재미술관 등 그의 작품 3개가 20위에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조 교수의 작품들은 이 세 대표작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 ‘공공 건축’이란 사실이다. 공공건축은 민간에서 의뢰한 ‘특정 개인의 집’인 건축물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모두의 집’인 건축물이다.

한국에서 그처럼 공공건축에 전념해온 건축가는 실로 드물다. 관공서나 박물관 같은 주요한 공공건축은 지금까지도 건축가들보다는 기업화된 대형 설계회사들이 독식하고 있다. 건축가들 역시 공공건축을 꺼리는 경향도 있다. 건축주인 관청이나 기관들이 건축가의 전문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고집하고, 설계 과정에도 지나치게 간섭을 해대기 일쑤인 탓이다. 그런 점에서 조성룡 건축가의 공공 건축은 더욱 의미를 지닌다.

 

 

 

 

 

길로 이어진 작은 마을, 지앤아트스페이스

이 조 건축가의 주요 작품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공건축이 아닌 민간 건축 프로젝트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작은 미술관 겸 식당 건물인 ‘지앤아트스페이스(2008)’다.

지앤아트는 산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언덕길 초입에 자리 잡아 바로 위 백남준아트센터와 이웃하고 있는 건물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용인에서 가장 인기 좋은 명소 중 한 곳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많이 오해를 받는 건물’이기도 하다. 민간 건축물인데도 사람들은 이 건물이 공공건축물이라고 착각을 한다. 공공건축을 집요하게 추구해온 조성룡 건축가의 작품이기에 받는 ‘즐거운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립 미술 공간이면 건물은 근사하더라도 쉽게 들어갈 엄두를 내기 어렵게 건물이 닫혀있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지앤아트는 ‘한껏 열려있는’ 건물이다. 울타리나 담이 전혀 없고,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어서 어느 방향에서도 모두 진입이 가능하다. 건물도 덩치 큰 하나로 짓지 않고 5개로 쪼개지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진입로가 있고, 들어가면 마치 작은 마을처럼 느껴진다. 공간 중앙에는 작은 광장 같은 공터가 펼쳐지고, 알맞은 덩치의 식당 건물, 상점 건물, 미술관 건물이 공터를 둘러싼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건물이 공공건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건축주가 세 번째 찾아간 건축가였다. 건축주가 다른 건축가들이 한 설계를 포기하고 조 교수에게 다시 설계를 의뢰한 것은 지앤아트가 들어설 땅 문제를 설계로 해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건축주가 원한 건물은 미술 갤러리만이 아니라 식당, 카페, 도자기 가게, 도예 공방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건물 부지는 면적은 제법 넓지만 법규상 건물 바닥 면적 비율(건폐율)은 전체 면적의 20%를 넘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실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좁고 넣어야할 시설은 많았기에 조 교수 이전 건축가들은 건물을 위로 높이 올려 4층 한 동 짜리로 설계했다. 그러다보니 나머지 땅은 휑하게 남아있고 건물 하나만 홀로 높게 솟아있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80%의 남는 땅을 조경으로 꾸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에만 꼬박 1년을 매달렸다. 법규를 꼼꼼하게 살핀 뒤 건축가가 찾아낸 해법은 땅의 지형을 바꿔서 오히려 땅의 성격을 살려내는 디자인이었다.

우리나라 건폐율 규정은 땅과 이어지는 도로의 높이를 기준으로 한다. 곧 1층 땅 높이를 기준으로 건폐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 교수는 언덕 경사지인 땅을 안으로 움푹 파내기로 했다. 도로 높이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땅 면적의 20%만 건물을 지은 것이지만, 실제로는 지하가 지상이 되어 더 넓은 면적이 들어가도록 했다. 결국 지하가 뚫려 지상이 되는 묘한 건물이 탄생했다. 지면 레벨을 바꿔버리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래서 지앤아트는 건물들이 모두 2~3층짜리지만 도로 높이에서 보면 모두 1층이다. 모양이 서로 다른 단층집 5개가 모여 있는 모습이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동선은 경사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작은 광장에서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건물들이 오순도순 감싸고 있는 이 작은 광장에 서면 특별한 마을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풍경을 존중하고 공존하다

이런 묘안에 더해 조 교수가 그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며 집어넣은 개념이 ‘길이 되는 건축’ 또는 ‘건축화된 동네 골목’이었다. 지앤아트는 바로 위에 있는 백남준아트센터라는 유명 문화시설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건축가는 지앤아트의 건물 사이로 난 공간이 자연스럽게 백남준아트센터로 이어지는 길이 되도록 배치했다. 백남준아트센터를 찾아가는, 또는 그곳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관객들이 지앤아트를 통해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두 건물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했다. 이는 상업공간으로서의 수익에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런 설계 덕분에 지앤아트를 찾아오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지앤아트는 범상찮은 건물이다. 그럼에도 결코 혼자 큰 덩치를 자랑하지도 않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튀려하지 않는다. 주위의 고만고만한 건물들에 맞게 사이즈를 분절해 작게 보이게 해 마을 풍경을 배려했고, 위쪽에 있는 특별한 건물인 백남준아트센터와 경쟁하지 않고 함께 존중하며 공존한다. 그리고 어디로든 열려있는 건물이어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 건물을 즐긴다.

이런 구조는 분명 이 건물의 특별한 매력이지만 건축주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울타리가 전혀 없어 관리가 어렵고, 한껏 열린 내부의 광장과 진입로들은 겨울이 오면 쌓인 눈 치우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건축주는 건축가의 생각을 수용했고, 지금도 울타리를 칠 생각이 없다. 덕분에 건축이 동네 골목길을 만들고, 그 길이 다시 마을이 된 이 특별한 건축은 등장할 수 있었다. 건물 자체 못잖게 건물 사이사이가 만들어낸 공간의 매력을 이 건물처럼 잘 보여주는 경우는 실로 드물다.

 

 

사진 | 김재경 건축사진가, 지앤아트스페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