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시선으로 보는 화랑대역
글 임석재
화랑대역은 사관생도처럼 반듯하고 단정하다. 하다 보면 과해지고, 아차 싶어 줄이다보면
빈약해지는 게 인간의 부족함이건만, 화랑대역은 중용의 미덕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부재를 단순화해 구조적 안정성을 지키되 접합과 연결로 잔재미를 더 했다.
화랑대역은 간결하다. 큰 박공형 건물 한 채가 전부다. 그 속에 대합실 매표소, 사무실이 모두 들어 있다. 육군사관학교 별명인 화랑대 앞에 있는 이 역은 사관생도처럼 반듯하고 단정하다. 정면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창과 차양같은 디테일을 최대한 자제해서 기합 잘 들어간 사관생도처럼 곧은 모습을 보인다.(1936년에 지어졌기 때문에 이런 유추는 물론 우연의 일치를 가정해야 한다.)단순함을 넘어 추상적 분위기 까지 느껴지는데 결국 기하학적 덩어리 감이라는 근원적 미학을 지향하는 느낌이다. 근원성은 삼원색의 컬러 코드로 배가 된다. 노란 벽면에 빨강과 파랑으로 포인트를 주어 삼원색을 갖추었다. 건물 밑단과 간판은 파랑으로, 지붕 윤곽선과 차양은 빨강으로 칠했다. 날씨 맑은 날이면 푸른 하늘이 파란색 배경을 제공한다. 맑은 날 보면 마치 강렬한 세 가지 원색으로 꾸몄던 옛날 모 필름 선전 사진을 보는 것 같다.
비대칭적 대칭의 미덕
단순함의 미학은 절묘한 좌우 배치로 안정적이면서 흥겨운 조형성으로 나타난다. 좌우 동형 대칭은 아니지만 비대칭적 대칭이다. 삼각박공의 꼭짓점을 기준으로 삼아 좌우를 따져보자. 오른쪽에는 출입문과 창양이 있고 왼쪽에는 큰 창이 있다. 나무에 가려서 안 보이지만 이 창 옆으로 사무실에 해당하는 매스가 꽁지처럼 이어진다. 꽁지부분에는 작은 창이 하나 더 있다. 똑같이 겹쳐지지 않기 때문에 좌우 동형 대칭은 아니다. 그러나 좌우 양쪽 부분의 건축 부재를 견주어보면 얼추 비슷하다. 천정에 달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그런대로 평형을 유지할 겉 같다. 오른쪽 출입문의 진공부 면적은 왼쪽창 2개의 진공부 면적에, 오른쪽 차양의 무게는 왼쪽 꽁지 매스의 무게에 각각 近似(근사)하는 것으로 추정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좌우 동형 대칭이란 말 그대로 가운데를 축으로 삼아 접으면 좌우가 똑같이 겹친다는 뜻인데 이런 구상은 자칫 단조로우면서 권위적이 되기 쉽다. 이것을 피한 것은 변화도 주고 친근하게 보이고 싶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비대칭적 대칭이 그 조형 전략이다. 비대칭적 대칭이란 언뜻 보면 비대칭으로 보이는데 천천히 따져보면 좌우 조형이 대칭이 된다는 뜻이다. 위의 천정 애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전략 속에는 두 가지 의도가 숨어 있다. 좌우 동형 대칭의 단조로움은 피하되 너무 번잡해지는 것 또한 피하겠다는 양면성이다. 흥겨운 율동감이 느껴지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절제력이 묻어난다. 좌우가 따로 놀지만 균형은 확실히 잡고 있어서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처리는 기차역에 잘 맞는 조형성이다. 좌우 동형 대칭은 규모가 작은 간이역에는 기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특히 교조적 느낌, 즉 법제성(Institution)을 피하고 싶다면 더욱 그렇다. 법제성이란 형식성에 강하게 의존하는 판에 박은 권위인 셈인데 각종 공공건물의 기본을 이루는 조형성이다. 도심에 지어진 대형 기차역이라면 법제성이 필요할 수 있다. 많은 물류와 사람이 오가는 번잡한 장소라서 질서 유지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法制(법제)적 권위를 통해 최소한의 질서를 잡아야 한다. 간이역은 좀 다르다. 질서 유지보다는 친숙함이, 법제적 권위보다는 여행의 흥겨움이 우선이 될 수 있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경춘선이 갖는 감성적 의미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넓은 공간감과 옛날식 불편함이 주는 친숙함
대합실에 들어서면 넓은 공간감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다른 간이역 보다 확실히 넓다.
이번에도 친숙함을 유지하는데 정사각형의 비례감이 그 비밀이다. 한쪽으로 길었으면 위압감이나 황량함이 느껴졌을 것이다. 철로 쪽으로 길었다면 대부분의 공간이 통로로 쓰이면서 황량했을 것이다. 철로 쪽 방향에 직각으로, 즉 대합실에 들어섰을 때 양옆으로 길었다면 큰 공간이 덩그러니 남으면서 위압적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례가 되면서 여유와 안정감을 주고 있고 이것이 곧 친숙함으로 느껴진다. 정사각형의 기하학적 조형성 가운데 하나다. 대합실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이 독특하다. 먼저 분할을 보자. 창하나의 수직 길이를 옆으로 넓적한 4개의 직사각형으로 분할해서 안정감을 높였다. 건물 전체에서 느껴지는 그 안정감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진짜 특이한 것이 있는데 잠금장치다. 이 창은 특별한 공식 명칭이 없는 ‘옛날식 나무 창문’이다. 전통시대에서 개화기나 일제 강점기로 넘어오던 시기에 쓰이던 나무창이다. 20세기 전반부에 지은 아주 오래된 학교나 낮은 빌딩 같은 데에서 아직도 드물게 볼 수 있는 창이다. 간이역도 그 중하나이다. 기다란 열쇠처럼 생긴 쇠막대기를 손으로 돌려서 잠그고 풀게 되어 있는 디테일이다. 요즘은 원터치로 잠그게 되어 있어서 편리하지만 이 디테일은 창문을 잠그려면 몇 초 동안은 엄지와 검지로 쇠막대기를 부지런히 돌려야 한다. 풀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자잘한 재미가 있었다. 어른이 세게 잠가 놓으면 어린아이 힘으로는 못 풀 때도 있어서 엄마나 형을 찾게 되는데 이것은 가족사이의 의사소통을 자연스럽게 증가 시키는 장치일수 있다. 아이가 창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문을 한번 열거나 닫으면 손가락 끝에 딱딱한 쇠막대기의 기억이 제법 오래 남는데, 무엇보다도 내 집의 일부에 내 몸의 일부를 밀착시켜 비벼댄다는 것 자체가 집에 대한 애착과 친밀감을 높여준다. 집과 사람이 점점 분리되어가는 요즘 오히려 그리워지는 옛날식 불편함이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용의 구조 미학
선로 쪽 입면에서는 차양이 단연 도드라진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면과 유사하다. 단순함을 유지하되 일정하게 흥겹고 경쾌하지만 역시 일정하게 안정적이다. 차양을 받치는 구조 방식이 평범한 듯 복잡하고, 복잡한들 간결하다. 부재 개수를 보면 첨차에 해당하는 부재를 둔 점에서 꼭 필요한 것보다는 분명초과하고 있다. 그러나 낭비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소로에 해당하는 부재는 보에 합쳐서 개수를 줄였다. 사선 방향의 보강 부재를 정면과 측면 방향에 각 한 번씩 모두 2개를 넣었는데 이 개수는 시각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모두 적절해 보인다. 종합하면,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확보하는 범위 내에서 약간 초과하고 있는 정도다. 인색하지도 과하지도 않는 중용의 범위에 들어온다. 부재를 줄이면 구조 능력을 뽐내는 것이 되고 부재를 늘리면 과함을 자랑하는 것인데 둘 사이에서 균형을 취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상식의 힘인데, 부족함과 과함의 양극이 판치는 요즘이기에 오히려 돋보이는 교훈이다.
부재의 모양 처리도 마찬가지다. 임피역에서처럼 단부에 갈래를 치다 거나 하는 식의 특별한 멋을 부리지 않았다. 그러나 춘포역 같은 빈약함도 피했다. 절제의 품위다. 갖추되 과하지 않고 절제하되 없어 보이지 않는 절묘한 중용의 미덕이다. 이것 또한 상식의 힘이지만 살다 보면 지켜지기 힘든 경계의 미덕이요, 더욱이 이것을 건축적으로 구현해 보인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하다 보면 과해지고 아차 싶어 줄이다 보면 빈약해지기 쉬운 게 인간의 부족함이다. 상식과 중용이 가장 지키기 힘들다는, 그렇기에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가치를 갖게 된다는 역설의 미학이다.
이상이 어울려 멋 부리지 않고도 구조미학의 모범을 만들어냈다. 대저 우리나라에서 구조 미학이라 하면 사찰의 공포 구조를 이리저리 다듬어 모방하는 것이 통례다. 이것을 피해가는 건 물론 쉽지 않다. 서양에서도 하이테크 건축까지는 이런 통례의 범위에 들어올 정도로 움치고 뛸 여지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바꿔 애기하면 전통 사찰의 공포 구조가 이미 그 옛날에 구조 미학의 전형을 너무나 강력히 구축했고 그 패러다임이 21세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된다. 화랑대역의 차양도 크게 보면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비밀은 상식에 기초한 잔재미에 있다.
부재를 단순화해 첨차나 소로 같은 공포 부재의 노골적 모방을 피했다. 부재 접합은 구조적 안정성을 지키되 과하지 않은 상식을 지켰다. 부재 굵기는 답답하지도 허약하지도 않은 알맞은 스케일을 지켰다. 꼭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기본 역할에 묵묵히 충실한 건강한 상식이다. 여기에 잔재미를 더했다. 잔재미는 주로 부재들 사이의 접합과 연결에서 나타난다. 낙수통을 넓적한 철사로 매달아서 선을 이용한 연결 장면을 조형적으로 활용했다. 나무 부재를 연결한 볼트 머리는 간이역 차양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디테일인데 이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색이 잔재미의 미학을 돕는다. 지붕 윤곽-차양 윤곽-낙수통으로 이어지는 윗부분과 기둥 몸통에 해당되는 아랫부분은 붉은색으로, 이 사이에 낀 기둥머리 부분은 파랑으로, 박공 면은 노랑으로 각각 칠했다. 간결하면서도 잔재미가 살아 있는 분위기를 돕는 채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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