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궁궐건축

[스크랩] 2010/05/17(월) - 서울 종로 권역(창경궁-2)

걍~태수 2010. 5. 18. 17:55

창경궁-2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 주목 앞에서 바라 본 함인정 모습

창경궁 현황도

향나무와 주목

▲ 수령 160년의 향나무

▲ 수령 300년의 주목

함인정

▲ 함인정 전경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한 것이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 함인정 내부 천장에 걸려있는 도연명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시(四時) 편액 모습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았고, 주간에는 화반 두 개씩을 놓았다.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내진주(內陳柱)로 구획된 마루는 한 단 높게 처리하여 그 위로는 우물천정을 하고 사방둘레의 퇴간(退間)에는 연등천정을 하였다.

함인정 우측에 위치한 5층 석탑

▲ 함인정 우측에 위치한 이름모를 고려시대의 5층석탑이 한 기 서 있습니다.

▲ 5층석탑 기단부 모습과 탑의 몸돌에 조각된 모습

경춘전과 환경전

▲ 경춘전(좌)과 환경전(우) 전경

경춘전

▲ 경춘전 전경

이 전각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성종 14년에 건립되었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에 재건하였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그 3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정면 7칸, 전후퇴칸을 포함해서 측면 4칸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네모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간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네면에는 모두 세살문을 달았고 그 위에 교살창을 하였다. 좌우엔 온돌방과 중앙3칸은 마루를 깔았는데 양측으로 각 2칸과 전후퇴칸은 연등천정을 하고 우물천정을 하였다.

▲ 경춘전

▲ 환경전

환경전

▲ 환경전 전경

이 건물은 성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하였다. 그 후 순조 30년(1830)의 큰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3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곳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동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간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건물의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고, 외진평주(外陳平柱)와 내진고주(內陣高柱)를 배열하여 퇴량을 걸고 그 위로는 연등천장을 하고 안쪽으로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대량(大樑)은 내진고주 사이에 걸었다.

통명전과 양화당

▲ 통명전(좌)과 양화당(우) 모습

창경궁 통명전(보물 818호)

▲ 통명전 전경

통명전(通明殿)은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때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이 되고, 다시 이괄의 난과 정조 때 화재를 입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중건된 것이다. 남향한 전면에는 월대를 두고 양모서리에는 청동제 드므를 놓고 그 북쪽에 외벌대 기단 한 단을 두어 건물을 세웠다.

▲ 우측에서 바라 본 통명전과 통명전 좌축에 위치한 연못

정면은 7칸이고 측면이 4칸인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였다.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고, 전후퇴칸을 두었다. 북서쪽 일부의 방을 제외하고는 건물 내부 바닥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정면으로 보아 양측에 2칸씩 방을 꾸몄음이, 1984년의 발굴조사에서 연도지(煙道址)가 노출됨으로써 확인되었다.

양화당

▲ 양화당 전경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고종 15년(1878) 철종비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세벌대의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초익공계 포작(包作)을 짜았다. 기둥간에는 화반(花盤)없이 굴도리 밑에 장여를 받고 있는 소로만을 끼워 간결한 장식을 하였다.

▲ 좌우측에서 바라 본 양화당 모습

건물의 내부에는 좌우엔 온돌방과 중앙3칸은 마루를 깔았고, 전면 중앙의 2칸에만 툇마루를 창 없이 개방하였다. 외진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는 퇴량을 걸었고, 그 위로는 연등천장을 하고, 안쪽으로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대들보는 내진고주 사이에 걸리었다.

영춘헌 및 집복헌

▲ 위에서 내려다 본 영춘헌과 집복헌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集福軒)은 영춘헌의 서행각으로 초창 연대는 알 수 없다. 집복헌에서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 14년(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거처하다가 재위 24년(1800) 6월 승하하였다.순조 30년(1830) 8월 1일 오전 화재가 발생하여 환경전, 경춘전등과 함께 소실되어 순조 34년 장남궁을 헐어다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다.

▲ 영춘헌과 집복헌

1983년 동물사 본관에 있던 창경원 관리 사무소가 동물사의 철거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겨 임시 관리 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86년 중건 공사 때 창경궁 관리 사무소를 신축하고 이 건물은 변형된 부분을 보수하였다. 영춘헌은 본채 5칸이 남향하여 ㅡ자형을 이루고 본채의 좌우와 뒷면으로는 행각이 둘러져 있어 ㅁ자형을 이루었으며 서쪽으로 ㅁ자형의 행각이 이어져 맞붙어 있다.

▲ 풍기대로 오르는 계단에서 내렫다 본 영춘헌과 집헌헌 그리고 전방에는 환경전의 뒷 모습이 보입니다.

주위 건물과 비교해 볼 때 통명전, 경춘전, 환경전 등은 이익공식이고 양화당은 초익공식인 데 비하여 영춘헌은 기둥의 높이도 낮고 익공의 끝을 몰익공식으로 둥글게 굴려 초각하였으며 행각은 더욱 간결하게 굴도리집으로 처리하여 각 건물의 격을 엿볼 수 있다.

창경궁 풍기대(보물 846호)

▲ 창경궁 풍기대 전경. 사람들이 모여서 보는 것은 입체 해시계인 앙부일귀의 모사품입니다.

풍기대(風旗臺)란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추정하는 깃발을 세운 대이다. 이 풍기대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 228㎝로 아래에 상을 조각한 대를 놓고 그 위에 구름무늬를 양각한 8각기둥을 세운 모양이다. 8각 기둥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 꽂는 구멍이 있고, 그 아래 기둥 옆으로 배수 구멍이 뚫려 있다.

▲ 여러 각도에서 바라 본 풍기대

깃대의 길이는 확실하지 않으며 깃대 끝에 좁고 긴 깃발을 매어 그것이 날리는 방향으로 풍향을 재고, 나부끼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잴 수 있었다. 풍향은 24방향으로 표시하고 풍속은 그 강도에 따라 8단계 정도로 분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풍향의 측정은 농업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관측 자료로 세종 때부터는 제도화되었으리라 생각된다.

▲ 풍기대 우측에 있는 보물 845호의 모사품인 앙부일귀의 모사품(좌)과 수석(?)인지...

강우량을 측정하는 수표의 경우와 같이 처음에는 풍기대를 절의 당간 지주처럼 만들었으리라 추측된다. 풍기대는 지금은 없어지고 그림으로만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측기의 실증적 유물로, 기상관측기의 선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성종 태실

▲ 측면에서 바라 본 성종 태실의 전체 모습

양화당의 동북쪽 구릉지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태실은 4각형의 지대석 위에 석종형(石鍾形)의 몸체를 놓고 8각형의 지붕돌을 얹었으며 상륜부는 보주로 장식하였다.

▲ 앞뒤에서 바라 본 성종 태실

태실비는 태실 동쪽에 있는데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고 비신 앞면에는 "성종대왕 태실"이라 새겨져 있다. 이들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태를 묻은 곳인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에 있었던 것이다.

▲ 태실의 안쪽 모습

1928년 전국에 있는 조선 역대 임금의 태실을 대부분 서삼릉으로 이봉하면서 원래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 태전리에 있던 성종 태실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 태실비의 모습

성종은 세조 3년(1457) 덕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예종의 뒤를 이어 1469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 뒤 25년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경국대전」의 반포 등 조선의 문물 제도를 완비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창경궁을 창건한 임금이기도 하다.

춘당지

▲ 춘당지 모습

춘당지는 1909년에 조성된 원지(苑池)이다. 두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의 것이 1,107평방미터, 아래 것이 6,483평방미터이다. 연못 속의 섬(366평방미터)은 1986년에 조성한 것이다. 춘당지가 있는 이곳은 원래 연산군이 서총대(瑞총臺) 앞 대지를 파다가 중종반정으로 중단한 곳이다. 그 후 권농장(勸農場)의 논이 있었는데 연못으로 만들었다.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보물 1119호)

▲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전경

창경궁 안의 연못 옆에 건립되어 있는 탑으로, 8각 평면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이다. 기단부는 3단의 바닥돌 위로 높직한 1단의 기단이 올려진 모습인데, 각 면마다 조각으로 가득차 있다. 바닥돌은 4각으로 밑단을 두고 그 위로 2단의 8각 바닥돌을 두었는데, 8각의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다.

▲ 춘당지 옆에 위치한 팔각칠층석탑 모습

기단과 닿는 곳에는 1단의 연꽃받침을 놓았으며, 기단은 각 면마다 꽃무늬를 새겨 두었다. 기단의 맨윗돌 역시 연꽃무늬와 안상을 장식하였고, 그 위로 높직한 연꽃괴임돌과 2단의 낮은 괴임대를 두어 1층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7층에 이르는 탑신의 1층 몸돌은 높고 불룩하다.

▲ 팔각칠층석탑의 하단부와 중간 부분

형태도 라마탑에 가까운데 탑신뿐만이 아니라 기단부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라던가 옥개석 등 탑신부 전체에서 느끼게 되는 점이 역시 라마탑의 형태를 연상케 한다. 2층부터 낮아지며 지붕돌은 목조건축의 지붕처럼 기왓골이 표시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후대에 보충한 듯한 머리 장식이 올려져 있다.

▲ 1층 몸돌에 새겨진 각자와 문양

1층 몸돌에는 4각형의 대리석을 끼워 다음과 같은 4행(1행에 3자씩)의 명문과 1행의 조성년대가 각자되어 있다. “요양중(遼陽重), 개산도(開山都), 강연옥(綱挻玉), 암수탑(巖壽塔) ” “대명성화육년경인세추칠월상한길일조(大明成化六年庚寅歲秋七月上澣吉日造) ”여기의 성화 6년은 조선 제9대 성종 원년(1470)에 해당된다.

창경궁 대온실(등록문화재 83호)

▲ 창경궁 대온실 전경

1909년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이다. 건축 당시 한국 최대의 목조구조 식물원이었으며,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 대온실(식물원) 입구 전경

▲ 대온실(식물원)의 좌우측 모습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를 계기로 자생목본류를 중심으로 야생화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현재 대온실은 2004년 2월 6일에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 식물원 안쪽에서 바라 본 출입구와 하단에 새겨진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이화 문양

▲ 입구에서 바라 본 식물원 좌우측 모습

▲ 식물원 내부의 석조물 모습

관덕정

▲ 관덕정 전경

이 정자는 춘당지 동북쪽 야산 기슭에 있는 사정(射亭)으로 인조 20년(1642)에 취미정(翠微亭)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현종 5년(1664)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한다.

 

「예기(禮記)」에 "활쏘는 것으로 덕을 본다. 쏘아서 정곡을 맞추지 못하면 남을 원망치 않고 제몸을 반성한다."라는 것에서 이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면 1칸, 측면 1칸에 초익공계 양식이며 팔작지붕으로 된 정자 건물로 화강석 기단 위에 각초석을 놓고 각주를 세웠으며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 관덕정과 주변 모습

구조상 특이한 것은 측면에 비해 정면이 2배 정도 넓으나 같은 한 칸씩으로 구성되어 정면 중앙부에 수장폭 크기의 간주를 세우고 좌우 4분의 1지점에 각각 대들보를 올려 놓았다.

 

대량머리는 외부로 빠져나오지 않고 내부에서 창방 위에 얹혀 있는 상태이고 네귀의 기둥 위에서만 창방의 뺄목을 익공으로 조각하였다.「동국여지비고」에서는 "창덕궁, 창경궁 후원에 상림십경(上林十景)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관덕풍림(觀德風林)이다"하였다.

창경궁 관리사무소 주변의 석수 모습...

▲ 창경궁 관리사무소 주변에 있는 석수 모습 ▼

출처 : 나홀로 테마 여행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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