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1916. 4. 10 평남 평원~1956. 9. 6 서울.
30×41.7cm
1953~4년 무렵
서울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흰 소>는 이중섭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
오늘 아침 신문을 읽다가 이중섭의 기사를 보고 그를 다시 보는 차원에서 글을 올려 본다.
아래는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서울대서 화가 이중섭 미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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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부터 서울대 멀티미디어 강의동 앞에는 유리관에 담긴 미라(사진) 한 구가 전시됐다.
미라 위에는 “지난해 서울 성북구 미아리 빌라 재건축 과정에서 한국의 근대작가 이중섭(1916∼1956)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70년 역사를 가진 독일 가전제품회사 다운라이트의 한국 지사가 이 시신을 입수해 독일에서 보존 처리를 한 다음 작가의 서거 50주년을 맞아 서울대에서 처음 공개한다는 것.
미대에는 “어떻게 공개적인 장소에 미라를 전시할 수 있나” “시체유기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이 미라는 이 대학 미대 박재영(25·조소과 4) 씨가 만든 졸업 작품. 강화플라스틱으로 몸체를
만들어 아크릴로 색칠한 것이다.
박 씨는 “사람들이 쉽게 믿는 외국계 회사, 전문가, 전통의 권위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회사 이름을 영어로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뜻의 ‘다운라이트 라이(Downright Lie)’에서
따와 관광객들에게 힌트를 줬다”고 덧붙였다.
ㅡ동아닷컴 ㅡ
너는 전생에 소였나보다
어진 눈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까지
그윽히 담아내는
너는
전생에
소였나 보다
이중섭이 평소에 즐겨하던 말이였다.
피난 시절 대구에서 절친한 친구 구상시인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걸
모두 팔아 구상시인과 기생집을 가서 술을 마시고 자신의 판자촌에서 일본인부인과 같이 잔다.
잠을 설치는 구상시인과는 다르게 코를 골며 자던 이중섭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연필로
무언가를 그리는데 구상시인이 물어보니 동자를 그린다,소를 탄 어린애를 그린다고 했다.
그는 화선지가 없어 담배갑에다 그렸다.
프랑스 루르드 박물관에 소장된 소를 탄 동자의 그림도 담배갑이다.
동란후 서울에서 생활할 당시에는 다방에서 차를 곧잘 마시곤 했는데 그때 이상 김혜경이
한참 인기가 있을때라 주위에 많은 여대생들이 모였다.
여대생의 손목을 잡으며 희희낙낙 거리는 이상을 보고 이중섭은
"이상선생 당신은 당신의 명예를 이용해 당신의 손으로 뭇여성들을 추행하고 있소이다."
라고 했다한다.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던 도중 그는 검문하는 군인에게(당시는 군인들이 야간통행을 검문하였음)
"나야~나! 이중섭이 몰라?"라는 말을 하자 군인들은 그가 당시 권력자이자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친적으로 착각하고 보내 주었다가 나중에 땜쟁이(화가)라는 동료의 말을 듣고 군인들이 집으로와
총을 난사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다고 하나 지인들은 아마도 총기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후에 유명해지자 조선일보에서 이중섭 작품상을 만들게 되고
수많은 위작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다.
위작의 진위여부를 떠나 몇작품을 소개 한다.

봄의 어린이

다섯 아이와 끈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바닷가의 아이들

두 어린이와 복숭아

연꽃밭의 새와 소년

연꽃밭의 새와 소년

물놀이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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