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구본준의 한국의 현대건축

대학 교문의 새로운 변신- 숭실대 교문

걍~태수 2013. 8. 21. 15:43

 

진화하는 학교의 얼굴, 대학 교문의 새로운 변신 - 숭실대 교문
소통과 단절, 그 중심에는 ‘문’이 있다.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지만 그 이전에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경계의 의미 역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성이 주는 매력으로 최근 대학들은 교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랜드마크로 교문을 설계해왔다. 여기 조금은 밋밋하지만 땅의 성격을 고려해 낮게 퍼져 나가며 과장되지 않고 개성을 드러낸 숭실대 교문을 소개한다.
서울 시내 대학 캠퍼스 중에서 유독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 건물들이 많은 곳이 상도동 숭실대학교다. 숭실대에는 지금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주요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이 그야말로 즐비하다. 가히 한국 현대건축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 숭실대 캠퍼스에 묘한 건축물이 하나 있다. 건축물이지만 강의동도, 연구소도, 체육관도 아닌, ‘교문’이다. 언덕 위아래로 펼쳐지는 캠퍼스 맨 아래쪽, 상도로와 사당로가 만나는 모서리에 자리 잡은 보행자 전용 교문이 그것이다.

새롭고 파격적인 구조물이 된 교문
숭실대를 처음 찾아간 사람은 교문의 모습에 잠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교문인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기념 조형물로 여기고 지나칠지도 모른다. 거대한 부메랑처럼 휘어 돌아가는 둥글고 날렵한 금속 상판이 쇠뿔처럼 비스듬히 치솟은 콘크리트 다리 위에 올라탄 모습은 마치 땅 위에 내려앉은 비행접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래쪽 상도로에서 올라가다 보면 체육관의 관중석 구조물처럼 느낄 수도 있다. 숭실대학교란 글자를 새긴 문패는 없지만, 한쪽 끝에 교문 구조체와 한 몸으로 디자인된 경비실이 교문임을 살짝 가르쳐준다. 그동안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던 새롭고 파격적인 교문이다.

©문정식 건축사진가
©문정식 건축사진가

2005년 등장한 이 교문을 설계한 건축가는 권문성 성균관대 교수. 한강 변의 독특한 보행자통로 ‘자벌레’와 인사동 초입의 덕원갤러리 등을 설계한 중견 건축가다. 건축가로서 그는 ‘밋밋한 건축’을 중시해왔다. 도시에서 건물이 가져야 할 자세는 ‘밋밋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건물 하나가 강렬하게 도드라지기보다는 친근하고 부담 없이 다가오는 건축, 사람들이 직접 건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건축의 가치를 서서히 깨닫게 되는 건축이 그가 중시하는 건축적 지향점이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디자인이 강렬하고 실험적인 숭실대 교문은 오히려 뜻밖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 교문 이외에도 서울 이대부고 교문과 이대부중 교문을 설계하기도 해 국내 건축가로선 드물게 여러 학교의 교문을 디자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단정하고 절제된 디자인을 주로 해온 그의 작업 경향을 생각하면 숭실대 교문은 분명 눈길을 끈다.

원래 숭실대 교문은 학교 앞 두 길 중에서 더 좁은 길인 사당로에 있었다. 그런데 7호선이 개통되면서 숭실대입구역이 아래쪽 상도로에 들어섰고, 상도로가 확장되면서 주변 환경이 상당 부분 변하게 됐다. 상도로 쪽으로는 학교로 들어가는 쪽문이 있었고, 무허가 상가들이 학교를 가리고 있는 상태였다. 학교 쪽은 이 지역을 정비하는 한편 쪽문 대신 학교의 새로운 얼굴이 될 보행자용 교문을 만들기로 했다.



밋밋하게 조화롭게
건축가가 교문 설계에서 가장 고심하고 주목한 부분은 교문이 들어설 위치, 곧 땅의 성격이었다. 권 교수는 먼저 주변 건물들과 길의 흐름을 살폈다. 작고 좁은 길에 맞춰 아담하게 지은 건물들을 가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교문, 모서리 땅 양쪽의 방향을 모두 감싸 안는 교문으로 구상한 그는 규모보다 개성을 선택했다. 스스로 밋밋한 건축을 추구해왔지만 대학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상징성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길과 연결되어 학교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 새롭게 변한 주변 거리의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도 고려사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길 양쪽을 모두 바라보는 둥근 형태가 나왔다. 비행기 날개처럼 독특한 교문은 담으로 학교 앞을 가리지 않고 열어주면서 바로 옆 작은 숲과 앞쪽 학교 건물 사이를 잇는다. 자세히 보면 교문 지붕을 받치는 쇠뿔 같기도 하고 상어 지느러미 같기도 한 기둥 뒤에는 위에서 흐르는 빗물이 떨어지는 홈까지 파여 있다. 광장과 건축, 그리고 조형물이 하나로 합쳐졌다. 과장되지 않게 개성을 드러내는 대신 교문은 낮게 퍼져 나간다. 숭실대 교정은 언덕 위아래로 펼쳐지고, 중간에 우뚝 솟은 형남공학관이 학교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만큼 새 교문이 굳이 덩치를 앞세워 자기주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보행자용 교문에 맞는 알맞은 규모여서 멀리서 보면 그리 크지 않은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자연스럽게 강한 조형성을 느끼게 된다.
형태는 독특하지만 시공 측면에서 보면 의외로 간단명료한 점도 특징이다. 방사상으로 퍼지는 쇠뿔 구조체는 모두 같은 모양이어서 시멘트 거푸집 하나만으로 지을 수 있었다.

©문정식 건축사진가
©문정식 건축사진가

소통 혹은 경계의 상징인 교문, 대학의 아이콘이 되다
숭실대 교문은 한국에서 중요한 건축 장르로 자리 잡은 교문의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보여준다. 대학 건물들이 도시 안에 산재하는 외국과 달리 대학 교정이 하나의 단지를 이루는 한국에서 교문은 학교의 얼굴 역할을 하는 중요한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외국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교문들이 꾸준히 등장했고, 건축적으로 많은 논란도 낳았다. 학교 로고를 부풀려 만든 서울대 교문, 아예 교문을 거대 건물로 만들어 중간을 뚫은 홍익대 교문의 경우 특히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학교들이 교문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한국적 현상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2000년대 이후로 대학 교문들은 전문 건축가들이 설계하면서 다시 한 번 변화했다. 해외 건축가가 설계하는 교문들이 늘어났고, 김창균 건축가가 설계해 최근 완공된 서울시립대의 경우 아예 문 구조체 없이 바닥과 경비실이 하나의 디자인 콘셉트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문정식 건축사진가
©문정식 건축사진가

대학들이 교문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은 문이라는 것이 갖는 상징성과 대표성 때문이다. 문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지만 그 이전에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경계의 의미를 더 강하게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교문은 대학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는 강한 조형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숭실대 교문은 이 같은 ‘문’이란 건축의 본질적 속성과 한국 대학 교문의 특수한 속성을 모두 보여주는 점에서 ‘한국적’인 현대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