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독특한 사옥은?-작고 강한 개성파 사옥들
가장 독특한 사옥은?-작고 강한 개성파 사옥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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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기업의 꿈과 문화를 담는다 제니퍼소프트. 지난해 이 회사처럼 주목받은 회사도 없다.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은커녕 직원 수가 20여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다. 하지만 영업이익이 20억 원을 넘는 놀라운 경영 실적, 그리고 ‘꿈의 직장’으로 불릴 법한 복지 시스템으로 유명해졌다. 하루 7시간씩 주 35시간 근무, 출산 축하금 1000만원 지급 같은 조건들은 수많은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이 규정이었을 듯하다. ‘근무 시간에도 수영 가능’. 곧 회사 안에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고, 수영을 하는 것도 일의 연장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 제니퍼소프트 실내 욕실. 광장건축 제공 제니퍼소프트는 중소기업임에도 ‘사옥’ 하나로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를 톡톡히 거둔 사례다. 사옥이 조금만 더 근사해질 때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사옥이란 단순한 사무 공간이 아니라 기업의 문화와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하는 상징임을 제니퍼소프트는 명쾌하게 보여줬다.
▲ 제니퍼소프트 1층 카페. 광장건축 제공 단 두 가지만 더했을 뿐인데 특별해진 사옥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제니퍼소프트의 사옥은 ‘땅콩집’으로 단독주택 붐을 일으킨 이현욱 건축가가 설계했다. 외부에서 보면 차분한 이 사옥에는 특별한 공간이 두 곳이 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스파가 딸린 수영장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키가 큰 책장이 있다.
▲ 제니퍼소프트 책장. 광장건축 제공 이 회사 수영장은 실은 무척 작다. 길이 12미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수영장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회사 분위기는 완전 달라졌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근무 분위기, 그리고 직원들에 대한 복지 마인드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 제니퍼소프트 내부. 광장건축 제공 오히려 더 강렬한 것은 책장이다. 4층까지 올라가는 복도 중간을 관통하는 책장은 높이가 15미터에 이른다. 책장에서 책을 빼 계단에 앉으면 바로 도서관이 된다. 책장 하나로 전혀 다른 복도가 연출된 것이다. 건축은 아주 간단한 것만으로도 공간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옥이다. 제니퍼소프트처럼 ‘작지만 개성 넘치는’ 중소형 사옥들이 대한민국의 거리 풍경을 바꾸고 있다. 대기업 사옥처럼 크고 웅장하지 않아도 건축적으로 의미있는 시도를 보여주는 중소형 사옥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옥을 단순한 사무 공간이나 기업의 위세를 보여주는 간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의미로 바라보고, 이런 태도가 오히려 더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축주들의 인식 변화가 이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등장한 개성적인 사옥들, 규모는 작아도 건축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직원들에게도 자부심이 되고 있는 한국의 최신 강소(强小) 사옥들을 꼽아봤다. 주변 풍경을 품으며 현대적 전통미를 살린 기념비 같은 사옥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40대 건축가 중 한 팀인 장영철-전숙희(와이즈건축) 부부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역삼동 ABC 사옥은 회사 빌딩이 아니라 미술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우아한 모습을 자랑한다. ▲ 에이비시 사옥, 진효숙 건축사진가 앞에서 보면 통유리로 시원하게 처리해 투명하고 세련되게 보이고, 옆에서 보면 검은 벽돌을 다양한 패턴으로 쌓아올린 벽면이 마치 조형 작품이나 기념비처럼 다가온다. 벽돌 벽 중간에 구멍이 뚫리게 쌓아 마치 망사처럼 반투명하게 안과 밖을 반쯤 가리고 반쯤 노출하는 벽돌 벽은 묵직한 벽돌임에도 경쾌한 리듬을 보여준다. 5층 높이의 작은 건물이지만 그 존재감은 만만찮다.
▲ 에이비시사옥. 진효숙 건축사진가 건축가가 검은 벽돌이란 소재를 고른 것은 바로 옆에 문화재인 선정릉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역사문화 공간에 옆에 들어서는 건물이므로 혼자 잘났다고 튀기보다 선정릉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은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고른 소재가 벽돌이었다고 한다.
▲ 에이비시사옥 옥상 공간. 진효숙 건축사진가 이 건물이 재미있는 점은 설계 컨셉이다. 건축가는 옥상부터 설계해 아래로 내려가면서 건물을 구성했다. 선정릉을 바라볼 수 있는 옥상이야말로 이 건물에서 일하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자 행복이라고 보고 옥상을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정성껏 꾸몄다. 그러나 번쩍거리고 돈들인 티를 내는 장식은 전혀 쓰지 않았다. 묵직한 통나무 벤치와 전통 장독들을 중간에 배치하고 계단 마감을 나무 위주로 꾸며 자연재료들이 어우러지는 느낌을 추구했다. 마치 오래된 골목 같은 분위기가 나는 계단을 올라가면 선정릉이 눈앞에 탁 트이며 펼쳐진다. ▲ 에이비시사옥. 진효숙 건축사진가. 옥상 아래에는 비밀스러운 중정(안뜰)을 집어넣었다. ㅁ자 한옥처럼 내부에 작은 마당이 있는 구조 역시 한국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외국인 고객들이 자주 방문하므로 한국적인 풍경을 건물에 집어넣어 달라는 건축주의 요구에 맞춘 것이다. 가장 글로벌하고 현대적인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모던한 빌딩이면서도 한국 전통 공간의 운치를 만들어내는 점에서 ABC 사옥은 작아도 특별한 사옥 건축으로 건축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디자인의 힘을 보여주며 골목길에 들어선 조각 같은 사옥 흔히 ‘근린생활시설’이라 불리는 4~5층짜리 건물들이 줄지어선 서울 서초동 한 골목, 서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길 모서리 부분에 특별한 건물이 보석처럼 빛난다.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광주리 같은 외관이 차분하면서도 강렬해 첫눈에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임을 직감할 수 있는 빌딩이다. 수직 수평선만으로 이뤄진 일반 건물과 달리 건물 외관이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형태에 벽면이 비스듬한 부분이 많아 비정형 조각 작품 같다. ▲ 질모서리.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건물의 이름도 재미있다. Gilmoseri. 길 모서리에 있는 건물이어서 건축가는 이탈리아어를 연상시키는 ‘질모서리’로 이름을 제안했다. 디자인만큼 작명도 잘하는 건축가의 감각적인 작업으로 탄생한 건물이다. 질모서리를 설계한 이는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중진으로 손꼽히는 김인철 건축가다. 그는 서울 강남 교보문고 사거리에 있는 ‘어번하이브’ 빌딩으로 유명하다. 아무런 마감재 없이 오로지 노출콘크리트만으로 지은 고층 빌딩인 어번하이브는 구멍이 뽕뽕 뚫린 독특한 디자인으로 덩치는 작아도 마주보는 교보 강남타워와 팽팽하게 맞서는 다윗 같은 건물로, 2000년대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노출콘크리트라면 낮은 건물만 짓는다는 통념을 깨고 고층 빌딩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역작이다.
▲ 질모서리.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질모서리는 연면적 300여평에 6층 규모로 어번하이브와는 덩치가 비교가 안 되지만 건축적 완성도는 그 못지않다. 고만고만한 건물들만 즐비한 골목에서 이 작은 사옥은 별다른 장식이 전혀 없음에도 단번에 눈길을 끌며 디자인의 힘을 보여준다. 이 건물이 반듯반듯한 상자 모양이 아니라 조금씩 비스듬한 비정형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건물이 주변 건물을 압도하지 않게 덩치를 규제하는 사선 제한 때문이다. 모서리가 약간씩 잘리게 된 것을 역으로 건축 디자인 컨셉으로 활용했다.
▲ 질모서리.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외피가 두 겹이란 점이다. 구조체인 노출 콘크리트 벽면 안에 다시 내부 공간이 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안과 밖을 이어주는 중간 공간이 생겼다. 직원들이 창문을 열고 나가 외부 기둥 사이로 액자처럼 보이는 외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고, 잠시 거닐 수도 있는 공간이다. ▲ 질모서리.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사무용 빌딩의 가장 큰 약점은 너무 균일화된 공간이어서 숨을 돌릴 곳이 없어 일을 하는데 여유롭지 못한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자투리 공간들은 공간 활용성은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일하는 사람들에겐 나름의 효과가 있다. 빈틈없이 꽉 채운 공간에서 잠시나마 탈출하는 기분을 선사하는 것이다. 중정(안뜰) 효과를 내는 이 반 외부, 반 내부 공간은 화분만 몇 개만 놔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중소기업 사옥도 중요한 건축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미래를 위해 건물에 포석을 깔아놓은 사옥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부근에 최근 완공된 IT 기업 바텍의 8층짜리 사옥은 외벽 구조체 안에 다시 유리로 마감한 내부 공간이 있다는 점에서 질모서리와 무척 비슷하다. 그러나 이 건물에는 다른 건물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숨어 있다. 건물 안과 밖의 규모가 많이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내부 공간은 그보다 적다. 알맹이는 작은데 커다란 껍데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덩치를 과장하기 위한 단순한 허장성세가 아니다. 특별한 이유에서 나온 디자인이다.
▲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 바텍 사옥. 김용관 건축사진가 이 건물이 들어설 땅은 용적률이 250%로 규정된 지역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도시 계획이 바뀌면 용적률이 400%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는 땅이었다. 건축주로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당장 지었다가 나중에 크게 지을 기회를 놓칠 우려가 있지만, 그렇다고 용적률이 상향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염없이 사옥 신축을 유보할 수도 없었다.
▲ 바텍 사옥. 김용관 건축사진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찬중 건축가(경희대 교수)가 낸 아이디어가 ‘나중에 공간을 더 채워넣을 수 있는’ 건물이었다.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체로 외벽을 넉넉하게 만들고, 그 안에 실제 사무 공간은 현재 용적률에 맞춰 집어넣자고 제안했다. 단순하게 우선 건물을 낮게 지은 다음 나중에 그 위에 올려 증축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전체의 큰 변화 없이 지어놓은 다음 내부에서 융통성 있게 증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바텍 사옥은 그래서 기업의 성장과 대지 조건의 변화를 염두에 두어 용적률 조절이 가능한 건물로 지어졌다.
▲ 바텍 사옥. 김용관 건축사진가 문제는 구조체인 외벽과 건물 본체 사이의 빈 공간을 어떻게 처리느냐는 것이었다. 서까래를 외부로 더 돌출시켜 외벽에 연결해 발코니를 만드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 결과 이 건물은 각 층별로 외부 발코니가 3개씩 생기는 독특한 구조가 됐다. 발코니 위치는 층별로 모두 다르게 배치해 모든 발코니에서 다른 층 발코니를 바라볼 수 있다. 발코니로 잠깐 바람 쐬러 나온 사람들이 서로를 구경하는 재미가 생겼다. 내피와 외피가 중첩되고, 실제 공간과 외부가 서로 다르고, 그 안에 발코니들이 자유롭게 배치된 이 건물은 ‘겉과 속이 다른’ 매력을 지녔다. 면적이 아니라 공간의 질로 승부하는 사옥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고급 주택가 한편에 있는 건축설계사무소 SKM 사옥은 겉으로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다. 일반 사옥들과 달리 가정집 마당처럼 귀연 작은 마당이 앞에 있고, 한쪽 벽에는 식물이 벽을 타고 자라 여름이면 푸른 옷을 입은 것처럼 독특해진다.
▲ SKM사옥. SKM 제공 그러나 이 사옥의 진정한 놀라움은 내부에 있다.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다른 건물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층고(천장 높이)가 엄청나게 높기 때문이다. 설계 인력들이 일하는 1층은 층고가 6미터, 역시 설계 공간인 지하층은 5.5미터, 회의 공간인 2층은 4.5미터다. 일반 아파트 한층 높이가 3미터 정도인 것에 견주면 2개 층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한 층으로 쓴다. 그래서 2층 건물인데도 4층 건물 높이가 됐다. 층고가 높아지면 난방에 불리하지만 가스로 바닥 난방을 하고, 단열에 신경을 더 써 겨울철 난방비는 일반 가정집 수준으로 낮췄다.
▲ 일반 사무실보다 층고가 2배 가까이 높은 SKM 사옥 업무 공간. 사진 구본준 왜 이렇게 층고를 높인 것일까? 국내 대표적인 스타 건축가인 SKM 대표 민성진 건축가의 지론은 “천장이 높으면 공간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 층고가 높은 공간이 생산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공간의 높이는 사람에게 많은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주목했다.
▲ SKM 사옥 내부. 사진 구본준 하루 종일 컴퓨터 작업에 매달리는 직원들을 위해 공사비는 약간 더 들이는 대신 층고를 과감하게 높여 사옥을 설계한 것이다. 민 건축가는 지금까지 공간의 단위를 2차원적인 ‘면적’으로만 바라봤다면 이제는 높이까지 포함하는 3차원적인 ‘체적’의 개념으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사무 공간의 진정한 질적 차원은 깔끔한 인테리어보다도 답답하지 않게 여유로움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공간의 질에 달려있다는 경영 철학의 결과가 이 사옥으로 구현됐다.
▲ SKM 사옥 회의실. 사진 구본준 그런 점에서 SKM 사옥은 진정한 ‘공간의 럭셔리’를 추구한 사옥이다. 직원 모두에게 넉넉한 개인 공간(1인당 10평 수준)과 함께 층고 높은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직원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 “다른 사무실에 가보면 너무 답답해져서 회사로 옮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건축이란 그저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디자인이나 장식이 아니라 최선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솔루션이란 걸 보여주는 점에서 SKM 사옥은 정말 특별한 사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