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

정치를 망치는 ‘그룹싱크(groupthink)’의 함정

걍~태수 2009. 1. 12. 17:40

정치를 망치는 ‘그룹싱크(groupthink)’의 함정

                                                  박두식-조선일보 본설위원

오바바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승리 후 보여준 정치력은 단연 발군이다. 그는 2004년 11월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데뷔했다.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 임기 4년을 막 마친 초짜다. 그런데 그를 두고 ‘정치를 모른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의 정치력이 돋보인 대표적인 경우가 ‘라이벌들의 팀(Team of the Rivals)으로 불리는 내각 인선이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던 힐러리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앉히고,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던  로버트 케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키는 등 몇몇 상징적인 人選(인선)을 통해 그는 ‘포용과 통합의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 했다. 오바마의 人事(인사)는 정치적 교본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당내 경선을 시작할 때는 핵심 지지층을 의식해 이념적 성향을 강조하다, 중도층 표를 얻어야 하는 본선에서 점차 중앙으로 옮겨오고, 대선 승리 이후에는 국민 통합을 내건다. 지금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오바마는 이런 정치적 이동에서 성공하고 있다. 요즘 미국언론에 등장하는 “오바마의 핵심 지지층에서 소리 없는 불만이 쌓여간다”.는 기사들이 그 증거다.

 하지만 내각을 ‘라이벌들의 팀’으로 짜는 것은 쉽지 않는 도박이다. 주관과 개성이 강한 인물이 많다보면 자칫 통제 불능에 빠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오의 반박이 그룹싱크(Groupthink)의 함정이란 논리다. 그는 ‘역사를 보면 모든 이슈에 동의하고 토론과 반대 의견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 윌리엄 사파이어는 “그룹싱크는 집단적으로 같은 생각을 갖게 되는 과정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입에 달고 다니는 ‘코드’라는 말을 떠 올리면 이해가 쉬워진다. 생각과 코드를 맞춰가는 집단적 思考(사고)의 동일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 그룹싱크다.

 그룹싱크의 폐해는 미국보다 우리가 훨씬 심각하다. 최근 벌어진 여야의 국회대치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비난을 퍼부어도 정치권은 꿈쩍도 않는다. 핵심지지층으로부터 당직자,의원, 당 지도부까지 같은 판단, 같은 생각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바깥의 따가운 눈총은 잠시 피해 있으면 그만이다. 무리를 떠나거나 ‘왕따’가 되는 것은 치명적이지만, 패거리의 논리에 갇혀 있는 것은 안전한 선택이다. 같은 정당 안에서 계파에 따라 생각과 주장이 판이하게 다른 것도 小(소)그룹의 이해관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룹싱크가 만연하면 아무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토론을 오래 해도 결과는 늘 비슷하다. ‘자신들만의 확신을 키울 뿐이다.

 정권이 그룹싱크의 틀에 갇히면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로 이야기하게 되면 호소력이 半減(반감)되고 리더십도 멀어져 갔던 원인을 따져 보면, 시대와 상황을 보는 정권의 눈과 국민의 눈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다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흔이 말하는 疏通(소통)의 위기다.

 오바마는 내각을 ‘라이벌들의 팀’으로 짠 것에 대해 “실용적인 선택”이라고 했다. 겉포장은 포용과 통합이지만, 도덕률이나 정치적 허영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란 이야기다. 이런 것이 정치에서 말하는 實用(실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