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태수 2008. 12. 16. 14:46

 


 

 

 

 

 

 

 

 

  

주두(柱頭)란 기둥 머리에 놓이는 목침과 같이 생긴 부재이다. 극락전의 주두는 주두 굽의 단면이 굽받침 없이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런 형식은 신라 시대부터 사용되어 왔던 오래된 형식이다. 극락전이 고려 양식이면서 신라 시대의 건축 양식을 간직한 고식이라는 것은, 이 주두(柱頭)의 곡선 처리에서 알 수 있다.

첨차(첨遮)는 주두 또는 소로에 얹혀 도리 또는 그와 직각 방향으로 교차하여 십자 맞춤을 하는 부재이다. 일반적으로 첨차는 외부에서 아래쪽 사각으로 나가는 쇠서(牛舌)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극락전의 첨차는 쇠서를 만들지 않고 사각으로 간략하게 끝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첨차(첨遮)는 주두 또는 소로에 얹혀 도리 또는 그와 직각 방향으로 교차하여 십자 맞춤을 하는 부재이다. 일반적으로 첨차는 외부에서 아래쪽 사각으로 나가는 쇠서(牛舌)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극락전의

첨차는 쇠서를 만들지 않고 사각으로 간략하게 끝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목조 건축에서 앞으로 내민 처마를 안정되게 받치며, 그 무게를 기둥이나 벽으로 전달시켜주기 위해 부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기둥위에서 대들보의 아래까지 짧은 여러 부재를 중첩하여 짜맞추어 놓은 것을 공포라고 한다. 극락전 공포는 기둥 위에만 놓여지는 주심포 형식으로 주두(柱頭), 소로(小累) 그리고 첨차( 遮)로 구성되어 있다.

봉정사(鳳停寺) 극락전(極樂殿)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 시대 목조 건물이다. 1972년에 완전 해체 수리를 실시했는데, 그 때 마루도리 받침 장설(長舌)에 파서 넣은 상량문이 쓰여진 한지를 발견하였다. 그에 따르면 천계(天啓) 5년, 조선 시대 1625년 인조(仁祖) 3년에 중수(重修)되었으며, 그 이전 고려 시대 1363년 공민왕(恭愍王) 12년에도 옥개(屋蓋) 부분을 크게 수리한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의 전통 목조 건축은 신축한 후 옥개 부분을 수리하기까지는 통상적인 예로 미루어 볼 때 대략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1363년보다 100∼150년이 앞선 1200년대 초까지도 건립 연대를 올려 볼 수 있게 되어 1376년 홍무(洪武) 9년에 중수된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보다 이 건물이 앞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연대뿐만 아니라 극락전에서 보이는 세부 양식, 즉 주두(柱頭)나 소로(小累), 첨차(첨遮)나 솟을 합장, 복화반(覆花盤) 등도 건립 연대가 훨씬 앞서는 기법을 보이고 있다. 현재 수리 복원된 극락전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단층 맞배집이며 남향하고 있다. 우리의 기술로 고려 시대 목조 건물을 처음으로 해체 조사하여 봉정사 극락전이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밝혀진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현재 국보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까지 올려볼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고, 양 옆칸에는 창문을 내었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